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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기자]
이제 한 달 여 뒤면 2024년도 막을 내릴 것이다. 24년에 환갑을 보낸 나의 첫 번째 새해 놀이터는 2025년 1월 12일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서 열리는 트롯 가수 영탁의 콘서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야 하지만 티켓을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거리는 상관없다.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 <막걸리 한 잔>이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꽂혔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래도 그 시절 내가 사랑하지 않았던, 아니 사랑하지 못했던 신한 적금 나의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도 되기 전에 나는 이미 막걸리 애주가가 되었다.










재택부업  가수 영탁이 막걸리 한 잔을 부르는 장면.


ⓒ TV조선




"숙아, 점빵(가게)에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오너라."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도는 음 s-more생활의지혜 성이다. 나는 우리 집 술 심부름 담당이었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 아버지는 논밭으로 나가시기도 전에 내게 막걸리 주문부터 해 두셨다. 우리 집은 경상북도 성주의 시골이었다. 아버지는 뙤약볕에서 잡초를 뽑고 수박 모종을 옮기며 하루를 보내시곤 했다. 폴더 핸드폰 마냥 허리를 접은 채 말이다.
지금처럼 병에 든 막걸리가 아니고 주전자에 적금이자비교사이트 한 되씩 담아서 팔던 시절이었다. 가게에서 논으로 가는 길은 짐짓 5리(약 2km)는 더 되는 거리였다. 가는 길이 정말 멀고 뜨거웠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이쪽 저쪽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본 다음, 입안 가득 꿀꺽 막걸리를 들이 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술 맛이 어찌나 달콤하고 시원하던지 오렌지 주스도 아이스크림도 부럽지 않았다. 신한중고차대출
논두렁에 도착했을 때는 막걸리는 당연히 반 주전자 밖에 남지 않았다. 발그레한 내 볼을 보시며 아버지는 "원참, 다른 점빵엘 가던지 해야지 우째 갈수록 술이 적냐?" 라고 하셨다. 내가 마셨다는 걸 아버지가 알았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알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시절 나는 그저 아버지를 원망만 했으니 말이다.
내가 마셔버린 막걸리가 너무 많았던 날엔 아버지는 일하시다 말고 동네가 아닌 동구 밖 삼거리로 나가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술은 아버지가 밭 일을 하는 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구 밖 삼거리로 나가실 때면 아버지가 술을 드셨는지 술이 아버지를 드셨는지, 늘 비틀거리고 노는 한량 같았다. 길거리에 누워 계실 때도 있었다.
우리 집은 버스 정류장 앞이었고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자주 봤다.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하루 일을 공 치고 해가 질 때 쯤, 막 차를 탄 아버지가 집 앞에 내리셨다.
몇 가닥 안 되는 입 가의 흰 수염 뿌리에 허옇게 묻은 막걸리가 창피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집안으로 들어오시는 그 발걸음 하나하나도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그렇게 들어왔으면 그냥 조용히 주무시길 바랐지만 아버지는 작은 소반에 담긴 김칫국물과 막걸리를 놓고 또 밤새 노래를 했다.
영탁 노래의 가사 중 "그 세월에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 시키는 아버지를 원망했어요"가 나온다. 듣자마자 나는 상주 시골 집의 그 풍경이 떠올랐다. 그 시절 딱 내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 찰밥에 묵은 나물 무침에 호두, 밤, 땅콩, 견과류까지 한 상 차림을 맞이했다. 한 해 동안 무사태평과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바라며 "부스럼 깨 묵자"를 소리 내어 외쳤다. 이날 아버지는 주전자째 들이켰던 막걸리 대신 잔에다 한 잔씩 따라 주시던 귀밝이 술을 드셨다. 영탁 노래처럼 "막걸리 한 잔"이었다.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 가슴에 대못을 박던 /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나는 영탁 노래 가사처럼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대못을 박던' 일까지는 없던 거 같다. 그저 아빠와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인 마냥 피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말로 대못을 박든 아니든, 내가 아버지를 원망했던 마음은 이미 알고 계셨을 거 같다. 귀밝이 술을 따라주시면서 차마 나를 달랠 자신조차 없던 아버지를 이제야 헤아려 본다.

그날도 아버지는 막걸리 한 잔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찌감치 아버지는 이웃 동네 분과 함께 모여 윷놀이도 하시고, 농악 놀이도 하시며 한바탕 신명 나게 노셨다. 노을이 질 무렵,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술에 몸을 맡긴 채 갈지자 휘적휘적 걸어 집에 오셨다.
그날 밤 많이 피곤하셨는지 따신 물에 목욕을 하시고는 편안히 잠자리에 드셨다. 환갑을 갓 지난 어느 날, 우리 아버지는 수박덩이만큼 커다란 하늘의 보름달이 되셨다. 그해 정월대보름이 아버지의 제삿날이 되었다.
영탁 콘서트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무대의 조명이 비추는 순간, 어릴 적 우리 마당에 비치던 달빛이 떠오를 것 같다. 아버지의 흔들리던 발걸음, 장단에 맞춰 웃던 목소리, 술잔을 부딪치던 그 따뜻한 손길들. 그 모든 것이 그땐 왜 그렇게 불편하게만 느껴졌을까. 이제 와 생각하면 아버지는 나름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셨을 뿐이었다.
이제야 느낀다. 아버지의 막걸리 한 잔은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로였고, 삶을 견디는 힘이었다. 오늘 영탁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그 멜로디에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한숨이 함께 묻어 나올 것만 같다. 어릴 땐 미웠던 당신이, 이제는 그리운 당신이 되었다. 콘서트 장 하늘 위에서 웃고 계실 그분께 내 마음 한 조각을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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