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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들었다. 피아노 하는 단단한 본사에 것을[고창남 기자]▲ 문명순 12월 1일부로 취임한 신임 문명순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
ⓒ 고창남
최근 문명순 전 더불어민주당 고양갑 지역위원장이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동안 KB국민은행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금융경제연구소 이사, 한국감사협회 부회장 수협 햇살론 등을 역임하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을 지내면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등에도 출마한 이력이 있는 문명순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을 지난 26일 만나 재단의 운영계획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먼저,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 취임을 축하드린다. 전태일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월복리 계산 서 전태일을 소개해주신다면?"전태일의 60년대 활동은 '바보회'라는 모임으로 했는데, 자신과 뜻을 같이할 10여 명의 재단사들을 모아서 '바보회'를 만들었어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찍소리도 못하고 살아온 자신들이 바보와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지요. 하지만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바보처럼 온 힘을 다해 싸워보자'는 의지도 담은 뜻이었지요.
대출금 상환방법 전태일은 '바보회'의 회장이 되어 근로기준법을 지키도록 싸움을 시작했지만, 한자를 모르다보니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첫째 이유는 근로기준법이 한자로 돼 있어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한자를 나한테 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째 이유는 돈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나한테 30 고등학생의 하루 00만원만 있었으면 '태일피복'이라는 봉제 회사를 만들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재단사들의 월급을 지금보다 두세 배 올리는 거다"라고 마음 먹었어요. 일종의 기업가 정신도 갖고 있었던 거죠.
결국 전태일은 자본금 3000만 원을 구하지 못해, 아니 눈을 빼주고라도 협조를 구하려고 했던,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국민은행 이자율 . 우리가 흔히 전태일 하면 평화시장에서 분신 항거하며 외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것도 있지만 전태일은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꿈꿨던 것 같아요. 이러한 전태일의 기업가 정신도 기억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 전태일 바보회 회장 전태일
ⓒ 고창남
- 전태일은 '애초에 학교 다닐 때부터 이런 꿈이 있었던 것이다'라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실제로 전태일이 학교를 다닌 기간은 1~2년도 안돼요. 대구에서 잠깐 있을 때 서울에 왔다가 다시 내려가고 했는데 거기서 단칸방 하나에 온 가족이 살면서 공민학교를 잠깐 다닌 게 전부였고 그게 가장 행복했다고 해요. 그걸 기억하는 대구 분들이 그 생가를 매입해서 후원자들이 지난 11월에 전태일 생가 복원을 한 거죠."
- 그러면 전태일 생가는 누가 언제 복원한 거예요?"송필경이라는 치과의사가 전태일과 직접 관련있는 분도 아니지만 전태일에 감동을 받아서 지인들한테 생가를 복원하자고 한 거예요. 그 치과의사가 지인들과 함께 시민들의 모금운동과 후원으로 생가를 복원한 거죠. 7~8년간 그분들이 직접 다 일일이 손으로 복원했어요. 그래서 금년 11월 13일에,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4주기에 정식으로 개관을 했어요."
- 근데 문명순 사무총장님은 어떻게 해서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을 맡게 됐어요?"전태일과 인연을 맺게 된 거는 전태일 열사 돌아가시고 나서 이소선 어머니 등 그 당시 노동계와 인연이 있었고 또 노동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구요.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2주 만에 평화시장에 청계피복노조를 만들고 전태일 친구분들이 거기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죠. 이 피복노조는 81년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오면서 강제 해산도 당하고 그래서 감옥에도 갔었거든요. 그 당시 형편이 가장 나은 노조가 금융노조였고 반면에 블루칼라 중에 가장 열악한 데가 평화시장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가장 풍족한 데서 가장 열악한 데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80년대 초 국민은행에서 노조 간부도 했고 88년부터 95년까지 제가 국민은행 노동조합에서 여성정책실장, 교육국장을 했어요. 그때 저희가 모셨던 강사가 노무현 변호사예요.
저희가 속초에 있는 국민은행 속초연수원에서 노조교육을, 특히 책임자/관리자 교육을 했는데 매번 노무현 전 의원이 강의하러 왔어요. 그때 저는 노조 교육국장이니까 강의 내용을 다 외울 정도였죠. 노무현 변호사는 "여러분들은 이렇게 좋은 은행에서 좋은 연수도 받고 월급도 많지만 가장 열악한 블루칼라 노동자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국민은행 등 은행 여성 간부들 모아서 자원봉사를 했죠.
그때 창신동에 왔는데 거기에 '참여성노동복지터'라고 있어요. 그때 마침 전순옥씨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대표로 있었어요. 근데 거기서 급히 요청이 왔고 우리도 금융노조의 여성간부들이 참여성노동복지센터를 지원한다고 해서 인연을 맺었죠. 그때 당시 10여년 가까이 '시다'였던 분들을 재취업 훈련을 시켜서 봉제를 패션으로 해서 패션 교육한 다음 훈련 기간을 마치면서 '수다공방'을 만들겠다고 해서 지원해준 거죠.
여성간부 대표로서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전태일 재단을 도와드렸고 공식적인 인연이 맺어진 것이죠. 90년대로 가서 이소선 어머니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모두 다 하나로 가자"라고 하시면서 2009년에 정식으로 재단이 됐어요. 기념관 때는 일종의 가족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재단이 설립되면서 가족 위주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일 위주로 운영했고요. 재단설립으로 이렇게 모양을 갖추고 초대 이사장인 공덕귀 여사가 그 당시 엄청난 사재를 털어서 1호 후원인으로 쾌척을 해주면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었죠. 그후 문익환 목사가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재단을 이끌었지요."
▲ 문명순 사무총장 ▲전태일 재단이 사업을 설명하는 문명순 사무총장
ⓒ 고창남
- 그러면 역대 이사장들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초대 이사장 공덕귀 여사, 2대 문익환 목사, 3대 김금수 선생, 4대 남정헌, 5대 이광택 교수, 6대 장기표 대표, 7대 이수호 전 민주노총위원장, 8대 이덕우 변호사, 현재 9대 임현재(전태일 친구) 직무대행, 10대 박승흡 매일노동뉴스 회장(내정). 이렇게 되는 거죠."
- 여러 이사장들 중에 이수호 이사장이 많은 일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을 했고 그후로 재단은 어떻게 됐어요?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2015년부터 21년까지 7년간, 원래 임기가 3년인데 실제로는 7년간을 연임하시면서 재단을 잘 일으켜 세웠죠. 이수호 이사장 때 조금 의미 있는 것은,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장학재단을 만들었어요. 이수호 이사장은 장기표 이사장으로부터 물려받아서 6년간 재단 좀 꾸리고 어머니 장학재단도 만들었고 전태일 장학재단도 겸하면서 그리고 초대 기념관장까지 겸했어요. 박원순 시장이 2019년에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이 세 개까지 이수호 이사장이 하다가 2021년 말에 관두시고 전태일 재단을 내려놓으셨어요. 이후 2022년부터 올 3월까지는 이덕우 이사장, 한석호 사무총장 체제로 꾸려갔지만, 2024년 1월~3월에 조선일보랑 공동기획을 하면서 문제가 생겨 한석호 사무총장이 권고사직되었고, 이덕우 이사장 역시 관두게 되었어요. 그후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거치면서 저에게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와서 제가 고민 끝에 사무총장을 맡게 된 거예요. 12월 1일 취임한 거죠."
▲ 전탱일재단 전태일 재단 건물. ‘손잡아라 하나 되어라’는 이소선 여사의 말씀이 현수막에 쓰여 있다.
ⓒ 고창남
- 이제 사무총장이 되셨으니, 앞으로 재단 사무총장으로서 계획은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동안 재단이 조금 정체 됐어요. 여러가지 사업들도 보다 더 확장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특히 문재인 대통령 당시에 2020년에 전태일 열사가 50주년에 우리나라 노동운동가 중에 최초로 국민훈장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받았는데 그 후로 확장성이 없었던 거죠. 사업 등 모든 부분이 원래 전태일 열사가 하려던, 문익환 목사가 하려던, 공덕귀 여사가 하려던, 그리고 이수호 이사장이 추진했으나 제대로 다 못한 부분들을 제가 제대로 사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태일 정신에 맞춰서 간판만 있고 명망만 가지고는 안 돼요. 실제로 일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정말 일하는 재단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특히 친구분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인 임현재 이사장 직무대행이 이달 말에 임원추천위원회를 열어서 새로 이사장을 선임할 예정이에요. 새로 선임된 이사장은 내년에 정식 취임을 하게 되죠."
- 재단 조직 중에 교육센터가 있잖아요. 교육사업은 어떻게 진행돼요?"저희 교육센터가 있는데, 교육사업과 관련하여 특성화고, 상업고 등에는 노동법, 노동교육을 1년에 네 시간 받게 돼 있어요. 우리가 그걸 교육부로부터 위탁받아서 저희 유능한 요원들이 교육센터에서 훈련을 시키고 수료증을 주고 강사 자격증을 만들어서 그분들이 고등학교에서 교육도 하고 할 생각이에요."
- 재단 사업들 중 첫째가 열악한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 도와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교육사업인데, 그러면 교육센터에서 하는 교육은 노동법 강좌 그런 거예요?
"교육사업은 첫째, 일정한 자격을 갖춘 강사들을 교육센터에서 양성하여 그분들에게 자격증을 주고 우리가 연결해주면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거죠. 특성화고는 교과과목에 1년에 네 시간 편성돼 있어요. 둘째, 교과서에 '전태일을 좀 넣자'는 거예요. 초등학교부터 우리가 유관순 열사, 안중근 있듯이 전태일 열사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름을 넣어야 된다는 주장이에요. 지금까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력했지만, 전태일 열사는 아직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아서 제가 나서서 교과서에 넣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촉구할 거예요. 셋째, 전태일 기념관에 시민들이 와서 이 건물 6층까지 다니면서 그당시 전태일의 모습과 활동상을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 '아 그 시대엔 이렇게 피복노조 하려고 3000만 원 펀드 편지도 있네.' 하는 걸 느끼고 전태일이 말했던 거, 흔적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활성화할 생각이에요."
▲ 교육센터 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참석한 주민들
ⓒ 고창남
- 재단 사업을 큭게 보면 비정규직 지원, 후원회원 확보, 교육사업, 홍보, 전태일 노동자상 등 5가지인데 그중에서 임기 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요?
"제 임기 3년 동안 전태일 재단의 중점사업은 세 가지예요. 첫째, 후원회원 확보와 홍보를 통해 재단을 활성화 하는 것이고요. 둘째, 교육사업을 강화하여 청소년들에게 교육하고 전국조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고, 정권이 교체되면 초중고 교과서에 전태일 이름 석자를 넣겠다는 거죠. 셋째, 저희가 크게 하고 있는 게 노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전태일 노동자상이 있고 88년부터 전태일 문학상도 만들었어요. 또 전태일 청소년 문학상도 만들었어요. 이런 좋은 걸 널리 알려야 하지요."
- 전태일 노동자상, 문학상, 청소년 문학상 뿐만 아니라, 지부 확대, 연대사업 등을 추진하려는데, 이것은 전태일 재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노동운동의 최대과제라고 생각됩니다. 한국노총 및 민주노총과 연대해서 이것을 하나의 금자탑으로 만들고 앞으로도 계승하도록 해야지 않나요?"맞아요.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고 또한 제가 ILO에도 알리는 등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여 시상금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이게 해서 ILO에 얘기해서 추천을 해달라고 할 거예요. 그걸 우리가 143개국의 노동단체에다 쓸 수 없으니, ILO에 요청해서 정말 케냐 산구석에서 이렇게 아주 열악한 분한테 노동자상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 언론에 더 나겠죠. 전태일 노동상 전태일 문학상을 글로벌하게 해서 언론들도 기삿거리가 돼야 쓰잖아요."
- 그러면 전세계에서 이렇게 재단법인이 노동자상을 제정해 가지고 시상하는 데가 있어요?
"몇 군데 있기는 한데, 예를 들어 한국노총 자체에도 있고 민주노총에도 있고 한데 우리처럼 순수한 어떤 특정 단체, 재단법인에서 주는 건 우리밖에 없어요. 왜냐면 재원이 안되고 또 받을 만한 사람을 줘야지 아무나 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한국노총에 추천 요청하다 보면 아무래도 한국노총 출신 노동자한테 주겠죠.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케냐에서 아이들을 살린 노동자와 같은 세계적이고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상을 주고 싶어요. 문학상도 마찬가지로, 상금은 큰 돈이 아니지만, 수상자 중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싶어요. 이왕이면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 사람 중에 제일 가난한 애들, 주로 그런 애들한테 장학금도 별도로 줘요. 이것도 좀 글로벌하게 하자는 거예요. 근데 중요한 거는 모집공고를 KBS, MBC 등 국내 모든 지상파 언론에 하고 이게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고창남
- 이 많은 사업을 추진하려면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전태일 재단 1년 예산이 대략 얼마이고 정부 보조금도 안 받고 기부금과 후원금으로는 감당 안될텐데, 수익사업이나 유튜브를 하면 어때요?
"예산은 2억밖에 안돼요. 2억에 상근이 4명이에요. 정관상 수익사업은 하면 안 돼요. 유튜브 전태일 TV도 있는데 보니까 다른 것만 올려놨더라고요. 제가 온 지 며칠 안 되는데, 제가 김어준보다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유튜브로 재미있게 전태일 열사와 그 삶의 흔적을 설명하고 이런 거 하려구요. 젊은 친구들 불러서 전태일 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흥행을 유도하고 홍보도 하고 글로벌화도 하는 거지요. 이를 통해 재원도 마련하고 다양한 사업도 할 수 있는거지요. 전태일 이름으로 정말 좋은 사업들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우리끼리 좌파야 우파야 티격태격만 한 거예요."
- 전태일재단은 비정규직, 영세하청업체 노동자, 사회활동가, 이주노동자, 청년노동자 등 우리시대 또 다른 전태일들을 응원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단체나 노동운동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전태일 정신의 기본은 휴머니즘이라고 봐요. 기본적으로 '사랑과 연대로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또한 전태일은 그 당시에 사회적 기업 등 실용적인 구상도 했고 맞상대는 거대한 자본가/자산가였죠. 노동의 신성함을 알리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간의 단결과 자산소득과 임금소득의 균형을 추구했지요. 이는 반드시 노동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소상공인과 1인기업도 포함돼요. 전태일은 불로소득은 안된다고 생각하여 일하는 대중의 정의와 자유를 갈망했고 노동 존중의 세상을 만들고자 했어요. 전태일의 현재적 의미를 되돌아보면 전국민이 전태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근데 대단한 결심을 하셨는데, 그러면 정치를 그만 하실건지? 정치는 그만둔 건지요?
"그만 둔건 아니고. 일시정지, 우선 멈춤이라고 할까요? 왜냐면 은행으로 말하면, 잠시 거래중지라고 할 수 있죠. 일단 정치활동이 애매한 게, 토요일마다 누구나 촛불집회 가요. 저도 가요. 한편 정치활동이라면, 당에서 직함을 가지고 선출직을 하거나 지구당위원장 또는 정책위 부의장, 정무직 당직자 정도는 해야 정치활동인데, 여기서는 정치활동 금지라서 평당원만 하기로 하고 3년동안 당분간 여기서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
▲ 연대의 50년 평등의 100년 ‘연대의 50년 평등의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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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재단 후원금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의 전태일재단 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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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학재단 후원금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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