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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사달승 작성일24-12-08 23:53 조회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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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가을기획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서 가장 도드라진 대목은 한국 회화사에서 최고의 보물로 손꼽히는 역대 최고 명화첩 ‘근역화휘’의 실체가 공개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국외로 유출될 뻔한 숱한 문화유산을 사들여 지킨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안목 스승이자 당대 최고 감식 nh햇살론 안이었던 학자 위창 오세창(1864~1953)에 의해 만들어진 지 100년이 지났고, 간송미술관에서 고이 간직해온 보물 화첩이다. 이 화첩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선 숱한 수수께끼를 낳았다. 왜 그동안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묻혀 있었는지, 서울대에 소장된 또 다른 ‘근역화휘’본은 어떤 관계인지 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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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해온 근역화휘 전 3첩. 위창이 1920년대 이후 별도로 엮은 다른 명작 화첩을 선물받은 친일 재력가 박영철이 1940년 경성제국대학(서울대의 전신)에 기증해 현재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천·지·인’ 3책본이다. 서울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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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간송미술관이 1971년부터 40여년간 봄가을 기획전시를 하면서도 ‘근역화휘’ 전모는 밝히지 않았던 관행을 깨고 드디어 실체를 밝히면서 학계의 눈길은 일제히 근역화휘가 전시된 간송미술관 2층 진열실로 집중되었다.
간송 쪽은 현재 3종(7책·1책·3책)의 ‘근역화휘’가 전한다는 것을 실물로 내보였다. 인천소상공인 7책으로 구성된 ‘근역화휘’, ‘현대첩’(現代帖)이라는 부제가 적힌 1책의 ‘근역화휘’, 천·지·인 3책으로 된 또 다른 ‘근역화휘’였다. 1916년 이전 완성된 7책본에는 총 189명의 244점이, 이후 1917년에 만든 1책본에는 32명의 38점이, 3책본에는 50명의 70점 서화 작품이 수록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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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소장 ‘근역화휘’의 첫머리를 수놓는 작품인 고려 말기 공민왕의 양 그림.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전시실 들머리 진열장에 놓인 전체 11책 화첩의 표지 내지에는 서예 대가 성당 김돈희가 위창에게 진상한다는 내력과 함께 쓴 ‘화휘’(畵彙)란 큰 예서 글씨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 내지 옆으로 가장 이른 시기 1915~1916년 제작된 근역화휘 7책본이 놓여 있었다. 고려 공민왕의 양 그림과 안견의 도롱이 삿갓을 쓰고 낚시하는 사람의 그림부터 조선 말기 민영익의 묵란도까지 189명의 작품 244점을 담고 있는 본책의 실체는 7책이란 사실이 처음 드러난 것이다. 중간에 놓인 1점은 ‘현대첩’ 부제를 달고 1917년 제작된 1책본이었는데, 오세창의 고모부 이창현의 묵란도부터 이한복의 ‘성재수간’까지 조선 말기~구한말 작가 32명의 작품 38점을 실었다. 직물과 문양 없는 종이로 장황한 천·지·인 3책본도 보였는데, 조선 중기 화가 이정의 묵죽도부터 근대기 화가 이도영의 ‘설리청창’까지 50명의 그림 70점이 실렸다.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근역화휘’에 실린 이정직의 묵죽 그림. 서울대박물관 제공


화첩의 전모를 공개한 것은 한국 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간송이 일제 말기인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오늘날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세워 사라질 위기에 있던 전통 그림과 글씨, 불교 조각, 무가지보 ‘훈민정음’을 사들여 지켜냈을 때, 그의 주요 명품 수집을 이끌고 안목을 키워준 걸출한 스승이자 측근이 바로 위창이었고, 이런 그의 안목과 혜안, 수집 성과를 집약해 엮은 명화집이 바로 ‘근역화휘’이기 때문이다. 간송과 인연을 맺기 전인 1911~1920년 완성한 근역화휘는 이후 교분을 맺은 간송 수중으로 들어갔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이 개관한 날 인근 간송 전형필의 거처인 북단장에 모인 당대의 문화예술계 인사들. 왼쪽부터 고희동, 안종원, 오세창, 전형필.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그런데 획기적인 근역화휘의 공개는 불편한 궁금증도 불러일으킨다. 서울대박물관에는 골수 친일파였던 박영철(1879~1939)이 1940년 경성제국대학(서울대의 전신)에 기증한 오세창의 또 다른 근역화휘 ‘천·지·인’ 3책본이 별도로 전해져 두 차례의 전시와 자료집 발간까지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영철은 고종 시대 육군 장성 출신으로 일제의 조선 강점을 적극 지지했을 뿐 아니라 강점기에는 함경도 지사와 조선상업은행장, 귀족 작위를 받으며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그런 그가 위창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 그가 편찬한 다른 버전의 근역화휘는 물론 35권에 달하는 역대 명현들의 글씨집인 ‘근역서휘’까지 컬렉션으로 인수하며 위창을 지원해준 게 버젓이 역사적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세간에서는 위창이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분이었고 일제강점기 문화유산을 지키며 문화보국을 실천한 간송의 안목 스승이었다는 점에서 항일 민족주의자로 보는 시선들이 많다. 하지만 친일파 박영철과도 관계를 맺으며 같은 성격의 미술사 정리 작업을 별도로 펼쳤다는 점에서 위창이 생전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박영철이 기증한 근역서휘와 근역화휘 컬렉션은 국립 서울대박물관 발족의 기본 토대가 되지만, 지금도 서울대미술관은 박영철 컬렉션이란 점 때문에 소장품으로 크게 홍보하지 않는다.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15세기 세종 시대의 화가 안견의 소품인 ‘사립독조’. 간송미술관 소장 ‘근역화휘’에서 고려 공민왕의 양 그림과 나란히 서두를 수놓는 그림이다. 도롱이에 삿갓 쓰고 홀로 낚시질하는 사나이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원래는 큰 그림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전해지는 작품이 거의 없는 안견의 그림풍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희귀한 사례다. 노형석 기자


간송 소장 근역화휘는 전모가 공개되지는 않았어도 화첩들의 작품은 전시를 통해 부분적으로 선을 보여왔다. 당시엔 시대별 작가별로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화첩 자체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이제 화첩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정리가 진행된 만큼 서울대에 있는 배다른 근역화휘와 비교 연구뿐만 아니라 공동 전시를 통해 위창이 간송, 박영철과 맺은 안목 교류는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도 짚어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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