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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올해 9월 일본 진보 주간지 '슈칸 긴요비'의 첫 '자이니치 코리안'(재일동포)이자 첫 여성 사장으로 취임한 문성희 사장.사진=본인 제공.
2003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평양 특파 바로연결 원 문성희 기자는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는 여성을 취재하고 싶었다. 이동도 자유롭지 않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선 취재에 동행하는 북한 정부 안내원에게 섭외를 요청해야 했다. 문 기자는 “평범한 주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지만, 안내원은 중년의 조선노동당 여성 간부를 택했다. 안내원이 '평범한 주부'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취재 취지를 이해하지 못해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 생긴 일이었다.
“이 사람이 어디가 평범하냐”(문 기자), “내가 택한 사람이 왜 별로냐”(안내원) 섭외 문제로 사흘을 내리 다툰 기자는 다시 “잘해보자”며 안내원에게 손을 건넸다. 한 달 뒤 안내원은 “가정주부를 취재하러 가자”며 탁아소 보육원에서 일하는 39세 주부 리춘하씨 집에 기자를 데려갔다. 그렇게 리춘하씨의 바쁜직장인 하루를 동행한 <가정주부의 하루, 집생활은 녀자의 어깨에-탁아소 보육원 리춘하씨 집을 찾아서> 기사가 나왔다.
“'똑똑, 똑똑'. 칼로 도마를 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여기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경흥동 제65 인민반 14층짜리 아빠트의 13층 4호실. 평양정보쎈터 과장인 림신도씨(41씨)의 댁이다. (…) 부부의 로임(임금)은 각각 남편 조금 림신도씨가 2750원, 춘하씨가 2000원, 집 사용료는 한 달에 380원, 그 외에 난방비, 수도 사용료 등이 나간다. 식비는 주식을 공급으로 조달하고 있으며 부식물을 사는데 약간의 돈이 나간다. 딸의 학비는 무료이지만 교과서값은 한 권 10원씩 물기로 돼 있다.” (기사 <집생활은 녀자의 어깨에> 중)
그간 언론이 다루지 않은 조금 더 유효이자율계산 평범한 북한 이야기는 한국 잡지 '작은책'에도 실렸다. 지난 9월 일본 진보 주간지 '슈칸 긴요비'(주간 금요일)의 첫 '자이니치 코리안'(재일동포)이자 여성 사장으로 취임한 문성희 사장의 일화다. 2017년부터 '슈칸 긴요비'에 글을 쓰던 그는 2018년 정식 기자 겸 편집자로 입사했고, 2021년 11월 편집국 선거를 통해 편집국장이 됐다. 문성희 사장은 지난달 27일 미디어오늘 화상 인터뷰에서 “창간 31년이 됐는데 지금이 가장 어려운 고비”라며 일본 내 진보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 문성희 슈칸 긴요비 사장이 2003년 보도한 조선신보 '가정주부의 하루, 집생활은 녀자의 어깨에-탁아소 보육원 리춘하씨 집을 찾아서' 기사 지면. 사진=문성희 사장 제공.
보수화되는 일본 사회, “진보 잡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장 맡아
슈칸 긴요비는 1993년 창간 당시부터 기업 광고가 아닌 구독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 정부나 기업을 가감 없이 비판하는 슈칸 긴요비는 일본 사회에선 “특이한” 존재로 취급된다. “옛날엔 진보·보수언론의 선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는 게 최근 일본 언론 분위기다. 아베 정권 시기보다는 진보 세력이 회복되고 있지만,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많아져 보수화되는 측면이 있다. 중국, 한국에 경제적으로 뒤지고 있다고 느끼는 젊은 사람들이 결국 보수화되기도 한다. 우리처럼 동아시아가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잡지는 일본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해 안 팔리는 것 같다.”
한때 5만 부까지 찍어내던 잡지의 구독자는 현재 1만 명가량이다. 보수화한 일본 사회와 신문·잡지를 보지 않는 미디어 환경 변화가 맞물렸다. 문 사장은 “특히 젊은 사람들은 슈칸 긴요비 자체를 잘 모르거나 읽지 않는다”며 “세대교체를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슈칸 긴요비 잡지는 한 권당 600엔(약 5600원), 정기구독은 1년에 2만5000엔(약 23만 원)이다. 구독료는 잡지 수입의 90%를 차지한다. 기업 광고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편집국 기치도 있지만, 축소되는 광고 시장에 영업이 어려운 영향도 크다. 가장 어려운 시기, 문 사장은 “진보 잡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경영을 맡았다. 그는 “잡지 문화 자체가 역사적으로 과도기에 있다”며 “사장으로서 목표는 영업 적자를 흑자로 만들어 직원들 생활이 곤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전 일본 총리의 국장 반대 관련 기사를 표지로 다룬 슈칸 긴요비. 사진=문성희 사장 제공.
사장 취임 직전 3년은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는 3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보도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총살 사건을 꼽았다. 2022년 7월 총살이 벌어진 날 마감을 바로 앞두고 아베 전 총리의 얼굴로 표지를 바꿨다. 이후에도 일본 자민당의 통일교 문제,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반대 등 관련 이슈를 계속 보도했다. “편집국장으로서 첫 1년은 무아지경이었다. 마지막 3년째가 가장 여유있게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는데 그러니 임기가 끝났다. 미국 대통령도 임기 두 번째에 일을 잘한다는데, 나도 2기가 있었으면 편집국장으로서 남길 수 있는 유산이 더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
두 번의 평양 특파원, 북한 주민들의 일상 생활 취재를 시작하다
1961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 문 사장은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다녔다. '조선시보' 기자로 일한 후 평생 조선총련 국제국에서 일한 아버지와 잡지 '조선화보'에서 일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자를 꿈꾸다 1986년 '조선신보'에 입사했다. 조선신보에서 20년간 근무하며 1996년과 2003년 두 번 평양 특파원으로서 일했다.
▲ 2011년 9월 열병식 이후 평양 시내를 도는 조선인민군을 바라보고 있는 문성희 사장. 사진=문성희 사장 제공.
“처음엔 북한에 관심이 없었고, 한국 문제를 다루길 원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가 시작됐는데, 아무도 관련 기사를 쓰고 싶지 않아 했다. 그때 문득 '그러면 내가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다. 막상 연구해보니 재밌더라. '노동신문' 등을 계속 읽으며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분석했다. 마침 1996년 평양 특파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북한에 가 직접 '사실'을 볼 수 있었고 '북한은 재밌는 나라'라는 생각으로 연구자로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가 평양 특파원으로서 처음 북한을 찾은 1996년은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북한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평양에 서너 달 머물렀는데, 실제 굶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 사람들의 어려운 생활을 많이 봤다. 그래도 과거엔 부정적인 면 관련 취재를 통제해 좋은 면만 보도했었는데, 당시 북한에선 수해 지역을 취재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세 명으로 팀을 구성해 수해 지역을 다 돌아다녔다.” 그는 개성, 황해 남북도 등을 찾아 수해로 논이 잠기거나 파괴된 집을 취재해 보도했다. 수해 현장을 발로 뛰며 보도하자 유엔(UN)과 일본 비정부기구 등 국제적으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많이 회복된 2003년 다시 평양을 찾은 문 사장은 역시 서민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취재를 이어갔다. 여성 축구 선수 등 여성들에 대한 취재도 넓혔다. 리춘하씨의 하루를 취재한 <집생활은 녀자의 어깨에>도 이때 쓴 기사다.
▲ 2011년 9월 평양 시내에 건설되고 있는 고층아파트 앞에 서 있는 문성희 사장. 사진=문성희 사장 제공.
취재 제약은 만만치 않았다. 섭외는 안내원을 통해야 했고,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어 조선신보 차로만 이동했다. 일반 주민은 기자 앞에서 말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 했고 이들 생활의 어려운 점이나 인간적인 이야기를 끌어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가 북한 취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타협'이다. “북한을 취재할 땐 (기자가) 하고싶은 대로 해선 안 된다. 안내원도 우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북한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 같이 도와가며 타협점을 만들어야 취재에 성공한다. 북한 사람들에게 정치 문제를 질문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등 대답하지 못할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언론, '북한은 이런 나라'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정적 측면만 보도”
그러던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인정했다. 그동안 북한 측 말을 믿고 납치는 없었다는 기사를 써왔던 그는 북한이 중학생인 요코다 메구미까지 납치한 사실이 밝혀지자 조선신보를 그만두겠다 다짐했다. '계속 오보를 쓴 것인데 내가 기자로서 자격이 있나'라는 죄책감에 휩싸였고, 결국 2006년 퇴사했다.
다만 퇴사 후에도 계속해 '서민의 삶'을 중심으로 북한 경제를 연구했다. 2019년(한국어판 발간)에는 북한 서민 경제를 담은 책 <맥주와 대포동-경제로 읽어낸 북한>을 펴냈다. 북한 경제 전문 대학교수가 되고자 도쿄대 한국조선문화연구 전공 박사학위도 취득했지만, 일본에서 북한 경제를 가르칠 수 있는 그의 자리는 없었다.
▲ 2019년 11월 서울 교보문고에서 진행된 '맥주와 대포동' 출간 기념강연회. 사진=문성희 사장 제공.
북한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는 많아도 서민의 삶과 경제를 들여다보는 학자는 많지 않았다. “북한이 사회주의 경제·계획경제를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 생활은 그렇지 않다. 배급은 끊긴지 오래됐고 시장,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도많았다.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북한 경제가 시장화되고 있다는 가설을 세워 논문을 썼다. 실제로는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북한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지 않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사진과 열병식에 참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미사일 이미지 등만을 내보내면서 북한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고착화된다. 북한 현실을 확인하지 못해 허위 사실이 기정사실화되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를 본 북한 중학생들이 사형당했다'는 보도가 확인 없이 확산되는 식이다.
문 사장은 “생활이 어렵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안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북한이) 독재자의 노예처럼 사는 곳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사귈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북한은 이런 나라다'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정적인 측면만 보도되지만, '사실'만 알려줘도 긍정적 측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일동포, 여성은 나의 마이너리티' 소수자 목소리 더 귀 기울여
문 사장은 '재일동포', '여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인을 마이너리티(소수자)로 규정했다. 편집국장일 땐 목소리 내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잡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사례로 재일동포 3세 유도선수 안창림씨 인터뷰를 꼽았다. 2013년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안 선수에게 일본 유도연맹은 귀화를 요청했지만 그는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2014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어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문 사장은 재일동포의 고민과 심정을 다루고자 안 선수 본인과 가족을 인터뷰했다. 한류에 주목하기 위해 한류 특집호를 발간하기도 했다.
▲ 안창림 유도선수를 인터뷰한 슈칸 긴요비 지면. 사진=문성희 사장 제공.
편집국장 재임 시절 '슈칸 긴요비가 한국 잡지가 되고 있다'는 독자의 비판도 있었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한국에 대한 목소리를 자제하기도 했지만, 사장이 된 지금 그는 “앞으로는 상관없이 보도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의 참정권 문제도 소수자로서 이야기로 다룰 필요가 있다. 실제 귀화를 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일본 선거에 출마한 사람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관련 보도도 꾸준히 하고 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말하는 공간이 일본에 많이 없기 때문에 슈칸 긴요비의 역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