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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와 이로 인한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코리아 밸류다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은 한국의 투자 비중 축소를 권고하기에 이르렀고,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 자산 투매로 중소기업창업대출 환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실시간으로 유동성 지표를 점검하며 이번 사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글로벌 IB “한국 투자 축소” 권고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글로벌 IB는 한국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앞다퉈 한국 시장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모건스탠리 창업지원 는 “(계엄 사태에도) 수출 약세와 소비 회복이 지연된다는 기본 전망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불확실한 정책 환경을 고려할 때 탄핵 가능성과 대통령 교체가 경제 전망에 대한 가계와 투자자의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어 내수·투자 활동의 하방 리스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7월 이후 실망스러운 움직임을 저소득자영업자대출 보여온 한국 주식에 반갑지 않은 정치 리스크가 추가됐다”며 “내년 한국 투자 비중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비중 축소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타격을 받자 원화 가치는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7일 야간 종가(오전 2시) 기준 달러당 1423원으로 계엄 선포가 있기 전인 3일 야간 종가(1401원 70전) 대비 20원 넘게 올랐다. 지난달 29일 이후 1주일간 원화 가치(-1.86%)는 유로화(0.28%), 호주달러(-0.74%) 등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절하됐다.
아다르쉬 신하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 아시아전략책임자는 “한국의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만 놓고 봐도 원·달러 환율이 1분기에 1450원까지 오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적 상황은 정량화하기 어렵지만, 환율에 리스크 프리미엄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거래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 건전성도 타격 불가피
문제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환율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면 금융사의 건전성이 훼손돼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위기가 번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금융사가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은 환율 급등이다. 환율이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오르면 수출 등 대기업의 외화예금 인출이 늘어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염려가 커진다. 외환 관련 파생상품에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 발생할 수도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금융사의 건전성 지표도 악화한다. 외화 표시 자산과 해외 출자금의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주요 금융지주의 자기자본비율은 환율이 평균적으로 10원 오를 때마다 약 0.01~0.02%포인트 낮아진다.
주요 금융지주는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BIS 권고 기준(8%)을 훌쩍 넘는 12~13%에 달하는 만큼 유동성과 건전성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탄핵 여부를 놓고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해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약화하면 주요 기업에 대출을 내준 은행들의 건전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금융사는 정치적 불안으로 야기된 금융 불안이 확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말에도 비상근무 체계를 가동 중이다. 4대 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탄핵 정국 장기화 우려에 따른 리스크를 실시간 점검하고 있고, 특히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2금융권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등 돌발상황 발생 가능성을 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유동성에 이상징후는 전혀 없다”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매일 아침 회의를 열고 24시간 수신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진/강진규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