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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워지는 시대정신을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간주하여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시민 공감을 얻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우며
권력욕만 드러냈다


실패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실패했어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경우는 많다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한 사람 자서전인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삶이 그랬다
그는 실패 소득공제제공 연속에도 불구
조선독립 향한 민족의식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근래 논문과 강연을 준비할 일이 있어 김산의 자서전인 <아리랑>을 다시 보았다. 1984년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읽다가 주인공의 삶의 스케일에 읽는 내내 놀랐다. 40년이 흘러 세 수원 광교신도시 번째 읽은 지금은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초점을 두었다. 여러 버전의 영어판, 일역본과도 비교해 보니 새로운 사실과 서지(書誌) 정보까지 얻을 수 있어 좋았다. 관련한 언급은 후일을 기약하겠다. 아무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역시 <백범일지>처럼 독립운동사 연구의 보물창고였다. 그래서 습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칼럼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자투리 나이키직수입정품 시간에 집필 방향을 짬짬이 구상해왔다.
그런데 12월3일 밤중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납득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담화 발표 직후부터 세계 최초의 쿠데타 중계를 시청하느라 집필 중인 원고 작업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계엄이 흔든 나의 ‘일상’은 칼럼의 방향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아리랑>이란 책의 사회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로 타협 시흥광명보금자리 했다.
비상계엄의 ‘척결’ 대상이 된 시대정신
계엄은 쿠데타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쿠데타는 군사력을 갖춘 상대방을 무력으로 제압한 5·16과 12·12 군사반란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친위쿠데타도 있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일어난 부산 정치 파동, 1972년 10월17일~12월27일 사이의 10월 유 국민은행 인문학적 소양 신, 그리고 1980년 5월17일 계엄군이 취한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 친위쿠데타는 무력을 손에 쥔 측이 일으킨다. 소수의 인원이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정해진 타깃을 타격하는 핀셋 반란이다. 대부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친위쿠데타도 그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단 실패했다. 독재에 맞선 시민은 정치민주화를 쟁취하고 제도화한 경험이 있다. 여기에다 시민사회는 개인의 창조적 자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민주화의 방향성에 동의해왔다. 하지만 12·3 친위쿠데타 기획자들은 두터워지고 있는 사회상식, 곧 시대정신을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간주하여 ‘척결’하고 ‘처단’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우며 권력욕만 드러냈다.
실패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했어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경우는 주변에 참 많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삶도 그랬다.
김산이란 이름은 책을 내기 위해 쓴 가명이다. 본명이 장지락인 김산은 1926년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장제스의 국민혁명에 참가했지만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좌절했다. 1927년 광저우에서 봉기하고 하이펑에서 소비에트정부를 만들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때 광저우에서 약 200명, 하이펑에서 15명의 조선인 공산주의자가 희생될 정도였다. 만주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때도 이렇게나 많은 독립군을 잃지 않았다. 조선 독립운동의 미래 지도자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겨우 목숨을 구한 김산은 1934년까지 베이징과 만주 등지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다 중국 경찰에 여섯 차례 체포되었고 그중 두 차례는 일본 경찰에 넘겨져 고생했다. 살아 돌아온 그를 동료들은 밀정 혐의를 씌워 당원 자격까지 박탈했다. 그런데도 김산은 당적(黨籍)을 회복하고자 당중앙이 있는 옌안을 찾아갔다. 당원 자격으로 만주에 가 조선인 무장부대에 합류하여 조선독립을 향한 무장투쟁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조선독립을 향한 민족의식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옌안에서 김산은 <아리랑>의 공동 저자인 님 웨일즈를 우연히 만났다. 그때가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즈음이었다. 김산은 그녀와의 대화에서,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 나 자신에 대하여 -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그가 얼마나 강인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독립운동사, 민주화운동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산의 강인함과 엄격함은 항일독립투쟁이라는 시대정신에 투철하려 했던 의지와 내면의 깊이를 말해준다. <아리랑>은 조선독립을 향한 전략적 전망과 그것을 향한 행동 하나하나를 꾸준히 옮겨간 삶의 궤적을 때로는 자료 추적하듯이, 또 때로는 문학적 필치로 드러냄으로써 그의 의지와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1984년 9월 첫 간행 이후부터 지금까지 개정3판에 모두 81쇄, 곧 1년에 평균 2쇄씩 간행할 만큼 독자들이 꾸준히 호응한 이유다. 처음에는 자서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데다 기념사업회나 누군가의 의도적인 지원으로 기록한 수치(數値)가 아니어서 더더욱 특별하다.
12·3 친위쿠데타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아리랑>은 일제강점하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한 사람의 자서전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한글 초판본은 1984년 전두환 독재정권 때 나왔다. 그래서 김산을 빼고 님 웨일즈만 저자로 표기했다. 1984년판이 참조한 1941년 영어판에는 저자가 ‘KIM SAN and NYM WALES’로 되어 있는데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출판사 사장은 책을 간행한 지 3개월 만에 기관에 불려갔고, 책은 용공서적으로 분류되어 판매 금지당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출판사 수색과 압수를 수년간 반복했다.
이념의 장벽과 물리적인 압박에도 <아리랑>을 찾는 독자는 꾸준히 있었다. 1980년대 후반경에 김산의 본명이 장지락이고 그가 누구인지를 밝힌 일본의 연구가 국내에 알려졌다. 익명성이라는 장막이 걷어지는 과정에서 그와 중국에 살아있는 가족의 운명 같은 삶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관련한 번역서 <김산과 님 웨일즈 아리랑 그후>(1993)도 간행되었다. 또 1959년경부터 1953년판 일역본 한 권이 국내 지식인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회람되면서 그들의 글과 언행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 <전환시대의 논리>(1974)를 집필한 리영희와 소설 <토지>의 저자 박경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다가 공산권의 맹주 소련이 해체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냉전질서가 무너지면서 이념의 압박은 더 약해져갔다. 드디어 1993년 개정2판 때부터 김산이란 이름도 님 웨일즈와 같이 나란히 등장할 수 있었다. 이념 부담의 완화는 출판사만이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김산의 삶을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밑바탕에 깔린 민족주의 정서에도 주목하는 독자가 늘어갔다. 조금 더 깊게 접근해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의 전략 관계를 상정하며 이념보다 그의 동선(動線)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사회주의운동도 독립운동이었다는 탈냉전의 시선으로 그의 삶을 이해하는 독자도 등장했다. 바뀐 시대의 흐름은 한국 정부가 2005년에 넷째 건국훈장인 애국장을 김산에게 추서(追敍)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한국 사회가 몰락한 공산주의 이념의 족쇄를 풀어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 사회 내부에서의 이념 갈등은 깊어갔다. 뚜렷한 미래 대안을 정립하지 못했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옹호’하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산만하게 등장해 세력화를 시도했다. 21세기 들어 일부 언론은 이들을 개혁보수, 신보수주의, 혁신우파라고 지칭하며 뉴라이트라는 말로 퉁쳤다. 뉴라이트는 남북관계야 어찌 되든 친북좌파 담론을 매개로 남남갈등을 확대하며 경계선을 그어갔다. 경직된 선 긋기와 언론의 설익은 범주화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며 그들의 허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동안 얼굴마담처럼 나섰던 일부가 급류에 휩쓸리듯이 이명박 정부에 합류함에 따라 뉴라이트라는 대안그룹으로서의 존재감이 빠르게 소멸해버렸다.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들도 아스팔트우파와의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들은 보수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면 모두 종북좌파이고 반국가세력이란 극단 논리로 계속 몰아붙였다. 마치 유신 정권 때 반유신 민주화운동 세력을 반체제 집단으로 간주하고 탄압을 정당화했던 경직된 논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태도였다. 결국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거치며 뉴라이트란 말은 패륜어(悖倫語)가 되었다.
이번 12·3 친위쿠데타도 이러한 흐름에 반전을 꾀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무지한 채 극우화한 대통령이 극히 소수의 정치군인과 결탁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의 주권 행사로 성립한 제22대 국회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괴물’이자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 여야도 구분하지 않았다. 실패 후 내란죄 처벌이 두려워지자 ‘간첩’을 잡으려 했다고 초등학생도 웃을 어설픈 변명까지 늘어놓았다.
이번 내란은 전후좌우를 따질 필요도 없다. 한국 사회가 쌓아왔고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패륜 반란이다. 내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인간들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잡범들이다.



신주백 역사학자


신주백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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