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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사달승 작성일24-12-22 04:29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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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한국 시간) 크리스티 뉴욕의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 제3부에서 한화 9억3000만원에 팔린 ‘ 히트론 책거리 10폭 병풍’이 부호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카 에르테군의 뉴욕 타운하우스에 걸려 있던 모습 [사진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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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균 필 '책거리 10폭 병풍' 가운데 부분 확대 [사진 크리스티]







경매무료상담“51만 달러(약 7억4000만원)! 앞에 계신 신사분 더 안 부르시겠어요? 그러면 이 가격으로 전화 응찰한 분께 갑니다!”

경매사가 망치를 내리쳤다. 새 주인이 정해진 작품은 바로 조선시대 ‘책거리 10폭 병풍’. 지난 14일 새벽 (한국 시간) 세계 2대 미술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의 뉴욕 지부에 남양주 별내신도시 서 치러진 부호 인테리어 사업가 미카 에르테군(1926~2023)의 소장품 경매 제3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10분간의 치열한 경합 끝에 본래 추정가 1만5000~2만5000달러의 20~35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낙찰 받은 구매자가 경매 회사에게 지급하는 26%의 수수료까지 합치면 ‘책거리’의 최종 가격은 64만2600달러, 우리 돈 9억3000만원에 달한다. 이날 경매에 오른 에르테군의 소장품 중 최고가다. 경매에 응찰한 기자는 이 장면을 14일 오전 2시30분에서 3시 사이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생중계로 관람했다.









지난 14일 (한국 시각) 크리스티 뉴욕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 제3부의 온라인 생중계에서 '책거리 10폭 병풍'이 낙찰되는 장면 [크리스티 웹사이트 캡처]
















조선 궁중화원 이택균(1803~1883 이후)의 ‘책거리 10폭 병풍’.전체 모습. [사진 크리스티]







조선시대 궁중화원 이택균, 책가도 대가
‘책거리(冊巨里)’는 책·문방구·골동품·꽃·과일 등을 함께 그린 조선 후기 채색화를 가리킨다. 책거리의 시작인 궁중화 책거리는 ‘책가도(冊架圖)’로도 불리며 서가(책장)에 정돈된 책과 각종 호사스러운 기물을 서양식 투시원근법으로 묘사한 독특한 그림이다. 조선 왕 정조(1752~1800)의 책가도 사랑은 유명했으며, 임금과 사대부들의 애호로 크게 발달했다. 그 후 점차 부유한 중인과 서민에게도 퍼져 민화로 발전했는데, 민화 책거리는 더 자유분방한 양상을 띤다. 책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크게 높인 2016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시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 문자도 책거리’에 따르면, 책거리는 “한국미술의 독자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가졌다.” 달항아리에 이어 현대미술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한국 고미술로도 꼽힌다.

게다가 이번 경매에 나온 ‘책거리 10폭 병풍’은 이택균(1808~1883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기에 미술작품 가격 요인 중 ‘작가의 명성’을 충족시킨다. 이택균은 조선시대 궁중화원으로서 ‘책가도의 대가’라고 불린다. 이름을 이형록(~1864)에서 이응록(~1872), 이택균(~1883년 이후)으로 여러 번 개명했으며 이택균 시기에는 책가도 바탕색이 청색인 것이 특징이다. 대를 이어 궁중화원이었으며 그의 조부 이종현 또한 책가도에 뛰어났다. 정조 임금이 차비대령화원(임금 직속 최고 화원) 정기 시험에서 이종현이 책거리를 그리기를 내심 기대하다가 다른 그림을 그려내니 호통치며 귀양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택균 책가도의 또다른 특징은 서가에 있는 각종 기물 중 인장 틈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을 그려서 일종의 작가 서명을 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에 나온 ‘책거리 10폭 병풍’의 고화질 이미지를 경매 전인 지난 12일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에게 보이자 관장은 바로 그림의 인장 부분부터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품 이미지를 두루 살핀 후 “이택균의 작품이 확실해 보인다. 퀄리티도 훌륭하다”고 평했다. 이 관장은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 문자도 책거리’ 전시 당시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였다.









이택균 필 '책거리 10폭 병풍'의 오른쪽 부분 확대. 맨위 서가에 있는 인장들 틈에 이택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이 보인다. [사진 크리스티]







또한 이 관장은 “작품 추정가가 너무 낮다”는 기자의 말에 동의했다. 2018년에 한국 케이옥션에서 이택균의 비슷한 책가도 10폭 병풍이 3억원에 경매를 시작해 5억6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또한 2019년에 마이아트옥션에서 작자 미상의 궁중화 책가도가 2억9000만원에 낙찰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 소장자가 안목 높기로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애틀랜틱 레코드 창업주의 부인인 미카 에르테군이다. 지난달 19일에 열린 그의 컬렉션 경매 제1부에서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대표작 ‘빛의 제국’이 수수료 포함 1억2120만 달러(약 1700억원)에 낙찰되었다.

관장의 말을 듣고 기자는 만약 기자의 보잘것없는 응찰가로 낙찰이 되면 횡재의 기쁨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박물관에 기증해서 국가 문화에 이바지할 것인가 하는 ‘김칫국 고민’에 빠졌다. 비슷한 이택균 책가도 중에 서울공예박물관에 있는 것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이 무색해지도록 14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경매사는 추정가보다 높은 3만 달러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그 앞에 판매된 소장품들은 추정가 이내에서 시작가를 부른 것과 대조적이었다.
“경매시장 침체기, 유명 작가 전시 많아야” “경매에서 시작가는 경매사의 재량으로서, 높은 가격의 서면 응찰이 많으면 시작가가 높아진다”고 18일 크리스티 코리아 이학준 대표는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택균 필 책거리 10폭 병풍’은 상위 추정가의 20배에 달하는 51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기자는 책거리가 제 가치를 찾은 것에 안도하는 한편 기자의 응찰이 허무하게 끝난 것에 쓴웃음을 삼켰다.









지난달 19일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 제1부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이 낙찰되는 모습. [사진 크리스티]







다만 해외 경매에 응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과 노고가 많이 들지 않는다. 크리스티를 비롯해 소더비, 필립스 등 세계 3대 미술 경매 회사가 모두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지사를 통해 응찰하면 된다. 이번 응찰의 경우 기자는 먼저 크리스티 코리아에 어카운트(회원 계정)를 오픈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이때는 여권 사본, 신분증 사본, 휴대폰 번호, e메일 주소만 제출하면 된다.

어카운트 번호를 부여 받은 후에 크리스티 코리아 관계자에게 원하는 응찰 방법을 밝힌다. 서면, 전화, 라이브 온라인 방식이 있다. 기자처럼 도전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된 경우에는 응찰할 수 있는 최고가를 써내는 서면 응찰이 가장 편하다. 관계자에게 응찰 최고가를 밝히면 관계자가 서면 접수를 대신해주며 “OOO 경매의 품목 OOO번에 대해 OOO 계정에서 가격 OOO달러에 서면 응찰하는 것에 동의한다”라는 영어 확인 문구에 “Yes”로 답하면 된다. 다만 7만5000달러 이상으로 응찰할 경우에는 은행 잔고증명서 등의 자산 증명이 필요하다.
전화로 계속 응찰가를 높이며 경쟁하고 싶을 경우에는 경매 현장의 직원과 영어로 통화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어를 원할 경우 현장에 한국인 직원이 있으면 그와 직접 통화할 수 있으며 아니면 한국 지사 직원과 현장 직원과 3자 통화함으로써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이택균 필 책가도 10폭 병풍’의 최종 구매자가 누구인지, 한국인인지에 대해 크리스티 코리아는 경매 회사들이 늘 그렇듯이 ‘방침에 따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원래 추정가가 낮았던 이유에 대해서 이 대표는 “한국 책거리의 가치를 무시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라며 “추정가를 낮게 잡아서 응찰자가 몰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합이 치열해지면 의외의 고가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결과적으로 한국 책거리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기쁘다”고 밝혔다.









국내 미술경매 낙찰 총액







한편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가 올해 크리스티 경매의 하이라이트”라고 이 대표는 밝히며 “덕분에 올해 극심한 미술시장 침체에도 전년 대비 하락이 크지 않게 선방했다”고 밝혔다. 18일 나온 크리스티 2024년 글로벌 매출 보고서에 따르면 경매 실적(온라인 포함)이 전년 대비 8% 하락했다.

세계적 경제 침체로 인해 미술시장에 찬 바람이 불면서 미술 경매 회사들부터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3/4분기 국내 미술경매 낙찰총액이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원래 미술 시장 침체기에 ‘2차 시장’이 ‘1차 시장’보다 피해가 큰 것이 보편적이다. ‘1차 시장’은 처음 나온 작품을 거래하는 시장으로서 화랑이 주축이 되며, ‘2차 시장’은 이미 거래가 일어났던 작품을 재거래하는 시장으로서 미술경매 회사가 주축이 된다.
이에 대해서 연구센터 대표인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무엇보다도 경매에 좋은 작품이 안 나오기 때문”이라며 “경기 침체에 영향을 덜 받는 부유한 컬렉터들이 있지만 그들이 사고 싶어하는 최고 수준의 작품은 가격 하락을 우려해 경기가 안 좋을 때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1차 시장의 경우 작가의 신작 퀄리티가 경기와는 거의 상관 없고 그러면 그것을 사려는 컬렉터가 있기 마련이다. 고정 팬이나 친지가 사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50억원에 낙찰되어 상반기 국내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의 전면점화 ‘3-Ⅴ-71 #203’. [사진 서울옥션]







그는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을 언급하며 “서구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나마 경매시장이 돌아가는 이유는 빅 컬렉터가 사망해서 그 컬렉션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면 경기 상관 없이 그 컬렉션의 ‘트로피 작가들’ 작품을 노리고 있던 컬렉터들이 달려든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만한 빅컬렉터가 없다”고 설명했다.

소위 트로피 작가는 이번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를 통해 초현실주의 미술 신고가를 기록한 마그리트 같은 20세기 초반의 거장들을 가리킨다. 미술시장 침체기에 이런 트로피 작가들이 버팀목이 된다. 한국도 “김환기·박수근·이중섭·유영국·이우환·윤형근·정상화 등 검증된 작가군이 침체시장을 버텨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미술관들이 이들의 전시를 꾸준히 열어야 한다고 연구센터는 주장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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