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소비자물가 전년比 3.7% 상승…10년만에 가장 높아 일시적이랬는데 4월부터 8개월 연속 2~3%대 물가 상승 장보기 겁난다는 국민…점점 커지는 인플레이션 공포한 시민이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농·축·수산물, 석유류 등의 일시적 공급 충격으로 물가가 상승한 것은 4월과 동일합니다. 최근 물가 오름세를 주도한 기저효과와 일시적 공급 충격 등은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6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당시 통계청이 “2021년 5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고 발표하자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니 너무 염려치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앞선 4월에도 2.3% 상승한 상태였다. 홍 부총리의 호언장담과 달리 소비자물가는 그 이후로도 2%대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급기야 10월부터는 3%대로 올라섰다. 농·축·수산물, 전기·수도·가스, 공업제품, 서비스 등 모든 영역의 물가가 치솟고 있다. 물가 관리에 실패한 정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문제는 앞으로도 물가 방어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의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거세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공급난을 악화시키면 물가가 더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물가 대응에 역량을 총집중하겠다”고 밝혔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올해 9월 14일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석유·보험료·달걀 줄줄이 올라…“장보기 겁나요”통계청이 2일 발표한 ‘2021년 11월 소비자물가지수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2011년 12월 4.2%를 기록한 이후 9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고공 행진을 거듭 중인 국제 유가에 농·축·수산물의 가격 상승이 더해졌고, 전기·수도·가스 물가도 일제히 올랐다. 공업제품과 서비스 등의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달 공업제품의 가격 상승률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5.5% 올랐고, 서비스 가격은 2.2% 상승했다. 구체적으로 휘발유(33.4%), 경유(39.7%), 자동차용 LPG(38.1%), 보험서비스료(9.6%) 등의 가격이 올랐다. 돼지고기(14.0%)와 수입 쇠고기(24.6%), 달걀(32.7%) 가격도 상승했다.올해 소비자물가는 4월 2.3%를 시작으로 9월 2.5%까지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하다가 10월부터는 3%대로 오름폭을 확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마트에 가도 장바구니에 뭔가를 담기 겁난다고 푸념한다. 인천에 사는 가정주부 임연희(64) 씨는 “집 근처 농협 하나로마트를 종종 이용하는데, 요즘은 달걀 하나 돼지고기 하나 사기도 무섭다”며 “함부로 돈 쓰기 어려운 은퇴 가정이라 반년 넘게 이어지는 고(高)물가 상황이 버겁다”고 했다.소비자물가가 상승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지난 상반기에 정부는 그 시그널을 애써 외면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다. 4월 소비자물가가 처음 2%대를 찍은 것에 대해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5월 21일 “글로벌 공급이 확대되면서 원자재가 점차 수급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이 주요 분석 기관의 전망”이라고 했다. 바로 다음 달인 5월에도 물가가 2%대를 기록하자 홍 부총리가 전면에 등장해 ‘일시적인 현상’을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물가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는 데 실패했다.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12월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1년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소비자물가가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자 정부는 그제야 태도를 바꿨다. 홍 부총리는 10월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정부의 당초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연간 1.8%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점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2% 전후 수준으로 하는 게 차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를 기록한 건 2012년의 2.2%가 마지막이다.오미크론 악재까지…인플레 공포 확산문제는 올해 남은 기간은 물론 내년에도 물가 방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12월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1월 소비자물가지수 동향을 발표하면서 “국제 유가, 곡물 가격, 원자재 가격 등의 추이를 볼 때 당분간 둔화할 것 같지 않고 개인 서비스도 오름세를 지속할 것 같다”며 “12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상당 폭의 오름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했다.물가 상승 압력은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나타내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했다. 10월의 2.8%에 이어 두 달 연속 2%대를 유지했다. 근원물가 상승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공업제품과 서비스 물가로 전이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높은 유가가 기업의 생산 비용을 높여 재화 가격을 밀어 올린다는 것이다.소비자물가지수 등락률 추이. / 통계청여기에 최근 아프리카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각국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닐 시어링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미크론이 공급망 차질을 심화하고 상품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물가 상승 압력은 인플레이션 공포를 키운다. 한국은행이 11월 23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7%로 전달보다 0.3%포인트(P) 올랐다. 11월 기대인플레이션은 2018년 8월(2.7%) 이후 가장 높았다. 또 상승 폭은 2017년 1월(0.3%P) 이후 가장 컸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1일(현지시각)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현재 급등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내년 하반기에 사그라질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문재인 정부도 부랴부랴 총력전을 시사했다. 홍 부총리는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12월 내 생활 물가가 최대한 안정되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가 동향 장관 점검 체제와 분야별 물가부처 책임제 도입, 지방자치단체 물가상황실 가동 등 내년 상반기까지 물가 대응 역량을 총집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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